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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이라는 자산은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에게 늘 특별한 의미를 지녀왔다. 고대에는 권력과 부의 상징이었고, 현대에는 불확실성을 헤치는 ‘안전자산’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런데 이제 금은 단지 개인의 투자 대상이 아니라, 전 세계 중앙은행이 신뢰하는 통화 준비 자산의 중심으로 다시 떠오르고 있다.
2023년을 기점으로 금은 유로화를 제치고, 미국 달러 다음으로 가장 많이 보유된 중앙은행의 준비 자산이 되었다. 세계 경제의 판도 속에서 이 같은 변화는 단순한 숫자 이상이다. 중앙은행들이 왜 금에 주목하는지, 그 이면을 들여다본다.
금, 준비 자산 세계 2위에 올라서다
유럽중앙은행(ECB)이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5년 전 세계 중앙은행 보유 자산 중 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20%로, 달러(46%)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이는 유로(16%)를 처음으로 넘어선 결과로, 통화 자산 순위에서 의미 있는 변화를 나타낸다. 2023년만 해도 금과 유로는 비슷한 비율(약 16.5%)을 기록하고 있었다.
왜 금인가? - 안전자산의 재발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미·중 무역 갈등, 트럼프발 관세 전쟁, 그리고 중동 정세 불안까지. 세계는 복합적 리스크 속에 놓여 있다.
이 같은 환경에서 중앙은행들은 달러 중심의 통화 시스템에 대한 의문을 품기 시작했고, 금을 제재 회피 수단이자 정치적 중립 자산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세계금협회(WGC)의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 중앙은행 중 25%는 금 비중을 결정하는 이유로 ‘제재 우려’와 ‘통화 시스템 변화’를 꼽았다. 즉, 금은 단지 가격이 오르기 때문이 아니라, 국가 간 통화전쟁의 방패막으로도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금값은 말 그대로 ‘금값’… 그 배경은?
2023년 금값은 30% 급등했고, 2024년 들어서도 29% 더 상승했다. 지난 4월에는 트로이온스당 3500달러를 넘어서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단순한 수요 증가가 아닌, 지정학적 리스크와 달러에 대한 불확실성이 만들어낸 결과다.
이스라엘-이란 간 공습 사태를 비롯한 중동 불안정성은 금의 가격 상승을 자극하는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
누가 금을 사는가? - 폴란드부터 중국까지
2023년, 가장 많은 금을 사들인 국가는 폴란드였다. 뒤이어 터키, 인도, 중국 등이 금 보유량을 빠르게 늘렸다.
이들 국가는 자국 통화의 불안정성, 대외 제재 리스크, 달러 의존 탈피 전략의 일환으로 금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일부 신흥국은 자산의 내재 가치와 유동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금의 매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금의 한계와 가능성, 그 경계에서
모든 중앙은행이 금에 대해 무한 신뢰를 보내는 것은 아니다. 금은 통화로 바로 사용되기 어렵고, 가격 예측이 쉽지 않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금은 준비 자산으로서의 한계를 여전히 안고 있다. 가격의 변동성이 높고, 수익 창출 구조가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시장이 금을 ‘정치적 중립 통화’로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는 단기 수익과는 별개의 맥락에서, 새로운 세계 경제 질서에서의 역할 변화를 의미한다.
결론
현재 금은 그 자체로 통화 시스템의 변화를 암시하는 자산이 되었다. 단지 가격 상승이 아닌, 국제 질서의 불확실성 속에서 신뢰할 수 있는 ‘보루’로서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금은 어쩌면 디지털 통화와 경쟁하지 않는, 아날로그 자산의 최종 보루일지도 모른다.
중앙은행들의 이 같은 행보는 향후 글로벌 금융 질서의 무게 중심이 일부 이동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